Page 79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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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下 79


                러한 시설이 식정(識情)이 있는 무리들로 하여금 어떤 종지(宗
                旨)를 이루게 하리라 기대하겠는가?만일 아무런 도리도 없다
                면 서천과 동토의 범부와 성인이 모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관음의 회상에 있던 어떤 승이 암두에게 와서 참문하고는
                손으로 왼쪽에다 원상 하나를 그리고,오른쪽에 또 하나의 원

                상을 그리고,중심에 또 하나의 원상을 그리는데,완성하기 직
                전에 암두가 손으로 한꺼번에 뭉개 버리되,승이 대꾸가 없거
                늘 암두가 꾸짖어 내쫓았다.승이 바야흐로 문턱을 넘으려는데
                암두가 문득 불러들이고 묻되 “그대는 홍주(洪州)관음원에서
                왔는가?”하니,승이 대답하되 “그렇습니다”하였다.암두가 다
                시 묻되 “아까 왼쪽의 원상은 무슨 뜻인가?”하니,승이 대답하
                되 “그것은 유구(有句)입니다”하였다.암두가 다시 묻되 “오른
                쪽의 원상은 척[聻]!”하니,승이 대답하되 “무구(無句)입니다”

                하였다.암두가 다시 묻되 “중간의 원상은 또 무슨 뜻인가?”하
                니,승이 대답하되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구절[不有不無句]입
                니다”하였다.암두가 다시 묻되 “내가 그렇게 한 것은 또 어
                찌하겠는가?”하니,승이 대답하되 “칼로 물을 베는 것 같습니
                다”하매,암두가 때려서 내쫓으면서 이르되 “이 중이 원상의
                종지를 얻지 못하여 허망하게 천착(穿鑿)을 일으킨다.만일 암
                두가 아니었다면 한바탕 홀렸을 것이다”하였다.

                  그 승이 앙산을 뵙고 묻되 “글자를 아십니까?”하고는 오른
                쪽으로 한 바퀴 돈 것을 놓고 보건대 기량(伎倆)이 이미 다했는
                데,앙산이 십자를 그려 보여주었으니,주로서는 주가 완벽했
                고 설명이라면 설명이 다했거늘 다시 그 뒷면의 허다한 객기
                [粥飯氣]를 요구해서 무엇 하리오?여기에서 이런 경지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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