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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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를 바란다면 당초에 “화상께서는 글자를 아십니까?”하고 묻
                자마자,다만 그에게 이르되 “원래 글이 짧다”해놓고 그가 어
                떻게 하는가를 살폈어야 할 것이다.
                  보지 못했는가?옛날에 어떤 승이 항상 한가하게 세월을 보
                냈는데,다른 어떤 승이 권하되 “상좌여,세월을 아껴야 되거늘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군요”하니,승이 대답하되 “그대는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가?”하였다.권하던 승이 말하되 “어째
                서 경을 보지 않는가?”하니,승이 이르되 “글자를 모릅니다”
                하였다.“어째서 남에게 묻지 않았는가?”하니,“이건 무슨 글
                자인가?”하였다.이에 권하던 이가 대답이 없었으니,이른바
                ‘글에는 점이 필요치 않고 풍악에는 소리를 보태지 않는다’함
                이 옳도다.
                  그 승이 다시 왼쪽으로 한 바퀴 돌고 이르되 “이것은 무슨
                글자입니까?”하였으니,이것은 평소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

                가고,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는 것과 왼쪽 무릎을 치고는
                이르기를 “이는 교의 뜻이다”하고,오른쪽 무릎을 치고는 이
                르기를 “이는 조사의 뜻이다”하는 것과 같은가,다른가?앙산
                은 별을 옮기고 북두성을 바꾸는 재치로 십(十)자를 고쳐 만
                (卍)자로 만들었다.
                  범어의 수라(修羅)는 번역하면 비천(非天)이요,나후(羅睺)는
                번역하면 장폐(障蔽:가린다)니 손으로 일월을 가리기 때문이

                다.이 승이 원상을 그린 것이 마치 아수라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 것 같기 때문에 97종의 원상을 수라삼매라 한 것이다.
                  범어의 누지(樓至)는 번역하면 제읍(啼泣:운다)인데 현겁(賢
                劫)의 천(千)부처님이 천(千)왕의 아들이었으나 마지막으로 기
                회를 얻어 최후에 성불하고는 울면서 이르되 “나는 어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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