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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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下 93


               -물이 모이면 개울이 이루어진다.
               시절이 이르자 힘써 밭갈이를 하노라니
               -피하는 이는 하지 못하고

               뉘라서 봄두렁[春疇]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진창을 두려워하랴?
               -하는 이는 피하지 않는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천동이 초방삼매(超方三昧)를 얻고는,암주가 장대 끝을 부둥
                켜안고 감히 움직이지 못하는 곳으로 슬쩍 다가가서 흔들어 움
                직이게 하였거니와 만일 한결같이 그렇게 한다면 법당 앞에 풀

                이 한 길이나 깊어지리라는 것이다.
                  우바국다(優婆毛匊多)조사에게 신견(身見)에 집착된 사람이 와
                서 제도해 주기를 청하니,조사가 이르되 “제도받기를 구하는
                요체는 내 말을 믿어 내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 데 있느니라”
                하였다.그 사람이 대답하되 “이미 스님께 와서 귀의했으니 마
                땅히 분부를 받자오리라”하니,조사께서 험한 산 벼랑에 높이
                솟은 교목(喬木)을 변화해 내고 그로 하여금 나무에 오르게 하
                였다.또 나무 밑에는 큰 구덩이 하나를 변화해 만들었는데 깊

                이와 넓이가 천 발[肘]이었다.조사께서 그로 하여금 다리를 떼
                게 하니 그 사람이 분부를 받들어 바로 두 다리를 떼었고,한
                손을 놓게 하니 한 손을 놓았다.다시 한 손마저 놓게 하니,그
                사람이 이르되 “이 한 손을 마저 놓으면 구덩이에 빠져 죽습니
                다”하였다.조사께서 이르되 “아까 분부를 따르겠다고 약속했
                는데 어찌하여 나를 어기는가?”하니,이때에 그 사람은 몸에

                대한 애착이 당장 끊어져서 손을 놓고 떨어졌으나 나무도 구덩
                이도 보이지 않고 곧 도를 증득했는데 “낭주의 산,풍주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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