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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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평화롭고 생업을 즐기면서 배 두드리며 노래하는 것을 태평
                 시절이라 하며,일삼을 게 없다[無事]고 한다.이는 눈멀어서
                 “일 없다[無事]”고 말한 것은 아니다.모름지기 문빗장을 뚫고
                 가시나무 숲을 벗어나,훌훌 벗어버리고 해맑기 그지없어야 참
                 으로 평상한 사람[平常人]이 되리라.그런 사람은 일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며,종횡무진하여 결코 없다고 집착하거나 있다

                 고 단정지어 버리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본래 일삼을 것이 조금도 없으니 차가 있으면
                 차를 마시고 밥이 있으면 밥을 먹는다”고 말한다.이는 매우 허
                 망한 말이다.마치 “아직 얻지 못했으면서도 얻었다 하고,깨치
                 지 못했으면서도 깨쳤다”고 한 것과 같다.원래 투철하게 참구
                 하지 못하고서 다른 사람이 심(心)․성(性)을 말하고 현묘(玄妙)
                 를 말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는 미치광이 말이다.본래 할 일
                 없거늘[無事]이것이야말로 한 봉사가 여러 봉사를 이끌고 가는

                 격이라 하겠다’라고 한다.실로 달마조사가 이 땅에 오지 않았
                 을 때는 뭐 하늘을 땅이라 하고,산을 물이라 불렀었던가?무엇
                 때문에 달마조사가 마침내 서쪽에서 오셨겠는가?여러 총림에
                 서 법당에 올라가고 방장실에 들어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윗줄에서 어떤 사람이 한 말)모두가 알음알이로 헤아림이
                 다.만일 알음알이와 헤아리는 정(情)이 없어지면 비로소 투철
                 히 알아차리게 되리라.만일 알아차려 투철해지면 여전히 하늘

                 은 하늘,땅은 땅,산은 산,물은 물이다.
                   옛사람이 “마음은 육근(六根)이요 법은 육진(六塵)이니 이 두
                 가지는 거울 위의 흠집과 같다”하였으니,이러한 지위에 이르
                 면 자연히 훌훌 벗어버리고 해맑기 그지없으리라.그러나 만일
                 지극한 법으로 말해 보면,이 또한 흔들림이 없는 확실한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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