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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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99


                 일은 언구상에 있지 않다.그러므로 운문스님은 “이 일이 만일
                 언구상에 있다면 삼승(三乘)의 십이분교(十二分敎)인들 어찌 언
                 구가 아니겠는가?왜 굳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꼭 왔어야만
                 했을까?”라고 하였다.분양(汾陽)스님의 열여덟 가지 물음[十八
                 問]가운데 이 물음은 상대방을 시험하는 물음[驗主問]또는 탐
                 색하는 물음[探拔問]이라 한다.

                   이 스님이 이런 물음을 한 것도 참으로 기특하며 만일 조주
                 스님이 아니었다면 또한 그에게 대답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스님이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하고 묻자,조주스님은 본
                 분(本分)있는 선지식이므로 곧 “동문․서문․남문․북문이다”
                 라고 하였다.그 스님이 “저는 이러한 조주를 묻지 않았다”고
                 하니,조주스님은 “그대는 어떤 조주를 물었느냐?”고 되물었다.
                 후인들은 이를 “할 일 없는 선[無事禪]이 사람을 적잖이 속인
                 다”고 한다.무엇 때문일까?그가 조주스님을 물었는데 조주스

                 님은 “동문․서문․남문․북문이라”하였다.그러므로 저 조주
                 성(趙州城)을 설명해 주었을 뿐이다.그대가 만일 이렇게 이해
                 한다면 세 집밖에 안 사는 작은 마을에 사는 촌놈이라도 불법
                 을 안다고 할 수 있겠다.이는 불법을 파멸할 뿐이다.마치 물
                 고기의 눈알을 구슬에 비하는 것처럼,닮기는 닮았겠지만 같지
                 는 않다.
                   산승은 “하남(河南)에 있지 않고 바로 하북(河北)에 있다”고

                 말하였는데,말해 보라,이는 ‘할 일 있는 선’이냐 ‘할 일 없는
                 선’이냐?모름지기 신중히 하여야 된다.원록공(遠錄公)이 말하
                 였다.“마지막 한 구절(즉 河北에 있다는 말)로 (깨달음의)관문
                 에 도착했다”하니,참된 진리는 언어로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열흘에 바람 한 번 불고,닷새에 한 차례 비가 내리며,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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