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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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03
옛사람은 원래 혈맥이 막히지 않아서 “물음은 답에 있으며
답은 물음에 있다”고 했다.설두스님은 이처럼 투철히 알아차려
대뜸 이르기를 “어구 속에 기연을 드러내어 그대로 치고 들어
왔다”라고 하였다.“어구 속에 기연을 드러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듯하다.즉 사람[人]을 묻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경계[境]를 묻는 것 같기도 하다.조주스님은 한 실오라기
만큼도 까딱하지 않고 곧 그에게 “동에는 동문,서에는 서문,
남에는 남문,북에는 북문”이라 하였다.
“삭가라의 눈에는 가는 티끌도 없다”는 송은,조주스님이 사
람[人]과 경계[境]를 한꺼번에 빼앗아 버리고 어구 속에서 기연
을 드러내어 그에게 답한 것이다.이를 두고 “기연도 있고,경
계도 있다”고 한다.꿈쩍하기만 해도 곧 그의 속셈을 비춰 보았
지만,이와 같지 못한다면 그의 질문을 막기가 어려웠을 것이
다.
‘삭가라(爍迦羅)의 눈’이란 범어(梵語)이며,여기 말로는 견고
한 눈,또는 금강안(金剛眼)이라 하기도 한다.걸림이 없이 비춰
보기 때문에 천 리 밖에 있는 가는 깃털 끝을 볼 뿐 아니라,또
한 삿됨과 올바름을 딱 구별짓고,득실을 분별하고,기연의 마
땅함을 구별하며,길흉을 식별하기도 한다.
설두스님은 “동․서․남․북 문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마구 철퇴를 휘둘러 부숴도 열리지 않는다”고 말하였다.한없이
철퇴를 휘둘렀는데 무슨 까닭에 활짝 열리지 않았을까?이는
설두스님의 견처가 이와 같았기 때문이다.그대들이여,어떻게
하면 이 문을 열 수 있을까?바라건대 자세히 참구하여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