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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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13
자(拂子)를 곧추세우시길래 내가 ‘불자로서의 작용입니까,아니
면 이를 떠난 작용입니까?’라고 물었더니,마조스님께서는 마침
내 선상(禪床)모서리에 불자를 걸어 놓고 한참 동안 말이 없으
시다가 갑자기 나에게 ‘그대는 이 뒤에 두 입술을 나불거리면
서 어떻게 사람을 교화하려는가?’라고 하셨지.내가 불자를 빼
앗아 곧추세웠더니,마조스님께서 ‘불자로서의 작용인가,이를
떠난 작용인가?’하고 되묻기에 내가 선상 모서리에 불자를 걸
어 놓았더니,마조스님은 위엄스럽게 한 차례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에 나는 당시 사흘 동안 귀머거리가 되었다네.”
황벽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으로 혓바닥을 쑤욱 내
밀자,백장스님이 말하였다.“그대도 이 훗날 마조스님의 법을
계승하지 않겠는가?”
황벽스님이 대답했다.“싫습니다.오늘 스님께서 말씀해 주셔
서 마조스님의 대기대용을 알았습니다.만일 마조스님을 그대
로 따라했다가는,반드시 뒷날 나의 자손이 없어질 것입니다.”
백장스님이 말했다.“그럼 그렇지!견처가 스승과 똑같으면
스승의 덕을 반감시키지.지혜가 스승보다 뛰어나야만이 비로
소 전수(傳授)할 만하다.이제 그대의 견처가 완연히 스승을 초
월한 작용이 있구나.”
여러분은 말해 보라,황벽스님이 이처럼 물었던 것은 알고서
도 고의로 물은 것인지,모르고서 물은 것인지.모름지기 그들
부자간이 행한 곳을 몸소 보아야만 한다.
황벽스님이 하루는 또다시 백장스님께 여쭈었다.
“위로부터 전해 오는 종승(宗乘)을 어떻게 보여주시겠습니
까?”
백장스님이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황벽스님이 다시 말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