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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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천자(大中天子)가 일찍이 가볍게 건드렸다가
                -무슨 대중천자를 말하느냐.비록 위대하다지만 모름지기 땅 위에 서
                 있는 존재이고,더없이 높다 하나 하늘이 있는 데야 어찌하겠는가?

               발톱과 어금니에 세 차례나 할퀴었네.
                -발톱 빠진 호랑이군.많은 말을 해서 무엇 하랴.기특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적잖은 기교이다.(황벽스님이)대기대용을 드러냈다 하면 온
                 시방세계,산하․대지 모두가 황벽스님에게 목숨을 구걸하리라.


               평창
                   설두스님의 이 송은 참으로 황벽스님의 본모습[眞贊:초상화
                 와 말씀]과 똑 닮았는데도 사람들은 진찬(眞贊)인 줄을 모른다.
                 그 말씀에는 몸을 벗어날 곳이 있으므로 분명히 말하기를 “늠
                 름하게 높은 기상 자랑 마라”고 하니,황벽스님이 이처럼 시중
                 (示衆)한 것은 또한 남[人]과 나[我]를 다투며 스스로를 드러내
                 고 스스로를 자랑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이러한 소식을 안다면 종횡무진 자재하여 때로는 외로
                 운 봉우리 위에 홀로 서 있기도 하고,때로는 시끄러운 저자를

                 휘젓기도 하리니,어찌 편벽되게 한 곳에만 매이겠는가?떼어버
                 리려 할수록 더욱 쉬지 못하고,찾을수록 더욱 보이지 않으며,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빠져들어 간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래 없이 천하를 날아다니는 것이 명성
                 이니,이름이 있어 세간에 전한다”고 하였다.알음알이[情]를 없
                 애고 불법의 도리와 현묘함과 기특함을 일시에 놓아버리더라도

                 아직 조금 멀었다.자연히 어느 곳에서나 (본래면목이)그대로
                 드러나 있다.
                   설두스님은 “단엄하게 세상에 거처하면서 용과 뱀을 구분지
                 었네”하였다.용이든 뱀이든 문으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시험
                 하니,이를 일러 용과 뱀을 구분하는 안목이라 하며,호랑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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