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7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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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87


                 위에 있는 늙은이를 찾아보려 한 것이며,또한 자신의 하나의
                 큰 일[一段大事]을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참으로 말을 헛되이
                 하지 않고 기연을 제멋대로 내지 않으면서,공부할 수 있는 경
                 지를 마련해 주었다고 하겠다.
                   듣지 못하였는가?오예(五洩:747~818)스님이 석두(石頭)스
                 님을 참방하러 가면서 먼저 스스로가 “한마디 말로 서로 계합

                 된다면 머무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바로 떠나리라”고 다짐
                 하였다.석두스님이 자리에 앉아 있자,오예스님은 소맷자락을
                 떨치면서 나가 버렸다.석두스님은 법기(法器)임을 알고 곧 일
                 깨워 주었으나 오예스님은 그 뜻을 알지 못하고 하직한 후 문
                 에 이르렀다.석두스님이 “스님”하고 부르자 오예스님이 석두
                 스님을 뒤돌아보니,석두스님은 말하였다.
                   “평생 이것뿐이니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려 다시는 따로 구
                 하지 마라.”

                   오예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쳤다.
                   또 마곡(麻谷)스님이 지팡이를 짚고 장경(章敬:757~818)스
                 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돌더니 지팡이를 한 번 내려치
                 고 우뚝 서 있자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다,옳다.”
                   또 남전(南泉)스님에 이르러 예전과 같이 선상을 돌고 지팡
                 이를 내려치며 서 있자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틀렸어,틀려.이는 번뇌의 힘[風力]으로 그러는 것이니,끝
                 내는 없어지고 만다.”
                   “ 장경스님은 옳다고 말씀하셨는데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틀렸다고 말씀하십니까?”
                   “ 장경스님이야 옳겠지만,바로 그대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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