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2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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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이를 잘못 알고서 “무엇 때문에 응당 노공(盧
公)에게 넘겨달라 하였을까?”하고들 있는데,이는 용아스님이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일반적으로 참청
(參請:참선 수행상의 질문)을 하려면 모름지기 문제의 핵심을
분별하여야만 옛사람이 서로 만나 깨달음으로 인도했던 일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선판과 포단을 활용하지 못하니”라고 송하였는데,취미스님
이 “나에게 선판을 가져오라”고 하자,용아스님은 그에게 선판
을 가져다주었다.이것이 썩은 물속에서 살림살이를 한 것이 아
니겠는가?분명히 이는 청룡(靑龍)위에 태워 줬는데도 용을 몰
줄을 몰랐던 것이다.그러므로 이것이 ‘활용하지 못한’것이다.
“응당 노공(盧公)에게 넘겨주오”라는 말에서의 노공은 육조
(六祖)라고 흔히 말하지만 잘못된 것이다.일찍이 남에게 넘겨
주지는 않았다.그런데 만일 남에게 넘겨주었다고 몰아붙여서
그를 나무란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예전에 설두스님은 스스
로를 노공(盧公)이라고 불렀다.그는 ‘발자취를 숨기면서 자신에
게 남긴다[晦迹自貽]’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읊었다.
그림 속 동정호를 무척이나 사랑했는데
물결에 어린 일흔두 봉우리는 푸르기만 했지.
이제는 한가로이 누워 지난 일 생각하니
돌병풍에 기대앉은 노공이 하나 더 있어라.
설두스님은 용아스님의 머리 위에서 걸으려 하였고,또 다른
사람들이 잘못 이해할까 염려한 까닭에 따로 송을 하여 사람들
의 의심을 잘라 버렸다.설두스님은 다시 염(拈)하였다.
“이 늙은이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구나”하고는 또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