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8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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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이렇게 일대사인연을 제시하여 투철하게 벗어났
는데,요즈음 사람은 탁 물어보면 공부한 곳이란 전혀 없으면서
도 오늘도 이렇게 보내고,내일도 변함없을 뿐이다.그대들이
이렇게 했다가는 미래가 다하도록 끝마칠 날이 없을 것이니,모
름지기 망상을 털어 버리고 정신을 차려야만 비로소 조금이라
도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보아라.용아스님이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고 하자,취미스님은 “나에게 선판을 가져오너라”
라고 하였다.용아스님이 선판을 가져다 취미스님에게 주었더
니,취미스님은 받자마자 바로 그를 후려쳤다.용아스님이 당시
선판을 바칠 때 취미스님이 치려 한다는 사실을 왜 몰랐겠는
가?그가 몰랐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무엇 때문에 선판을 가져
와 그에게 주었을까?말해 보라,어떤 계기를 만나서[當機]본
분소식을 알아차렸을 때에 어떻게 하여야 옳았겠는가를.그는
살아 있는 물[活水]을 피하고 스스로 썩은 물[死水]속에서 살림
살이를 하면서,한결같이 제 나름대로의 견해[主宰]를 지어서
이르기를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만 그러나 조사가 서
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또한 하북(河北)지
방으로 달려가 임제스님을 참방하고 여전히 이 질문을 하였더
니,임제스님은 “나에게 포단을 가져오라”고 하였다.용아스님
이 포단을 가져다 임제스님에게 건네주니 받자마자 그를 후려
쳤다.용아스님은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만 그러나 조
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고 하였다.말해 보라,두
큰스님께서 각각 법맥이 다른데 무슨 까닭에 대답한 것이 서로
같았으며,작용 또한 같았을까?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옛사람
은 한 마디 한 구절도 마구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