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9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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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89
그는 그 뒤 용아원(龍牙院)에 주석하였는데,어떤 스님이 물
었다.
“스님께서는 당시에 두 큰스님을 뵙고 그들을 긍정하셨습니
까,아니면 긍정하지 않으셨습니까?”
“ 긍정하긴 했지만 요컨대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었
다.
이는 흐물거리는 진흙벌 속에 가시가 있던 꼴이었다.상대에
게 한 수 물려주게 되면 벌써 제이의제(第二議諦)에 떨어지는
법이다.그리하여 이 늙은이가 정(定)만을 붙들고 늘어져 다만
조동종의 큰스님이 되었을 뿐이다.만일 그가 임제스님․덕산
스님의 문하였더라면 다른 생애를 개척했으리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내(원오스님)가 그 경우였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
을 것이다.그에게 다만 “긍정도 안 할뿐더러 끝내는 조사가 서
쪽에서 오신 뜻마저도 없다”고 했을 것이다.
듣지 못하였는가?어떤 스님이 대매(大梅:752~839)스님에
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 서쪽에서 오신 데는 뜻이 없다.”
염관(鹽官:?~842)스님은 이 말을 듣고서 “관(棺)하나에 시
체가 두 개로구나”하였으며,현사(玄沙)스님은 “염관은 작가
선지식이다”하였으며,설두스님은 “(죽은 놈이)세 명이 있었
구나”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다만 어느 스님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물어
서 “서쪽에서 오신 데는 별 뜻이 없다”고 말했다고만 그대들이
이해한다면 무사(無事)만이 깨달음이라고 집착하는 경계에 떨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