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3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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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203


                 子)스님한테 가고 아홉 차례나 동산(洞山)스님을 뵈었으나,뒷날
                 덕산(德山)스님을 참방한 뒤에야 (미혹의)칠통(漆桶)을 타파할
                 수 있었다.하루는 암두스님과 함께 흠산스님을 방문하는 길에
                 오산(鰲山)에 있는 주막에 이르러 폭설로 길이 막히게 되었다.
                 암두스님은 매일같이 잠을 자고 설봉스님은 한결같이 좌선을
                 하였다.암두스님이 꾸짖기를,“잠이나 자거라.매일같이 선상

                 에 앉아 있는 꼴이 일곱 마을에서 흙을 채집하여 만든 영험 있
                 는 토지신과 꼭 닮았구나.훗날 남의 집 젊은이를 홀리겠구나”
                 라고 하니,설봉스님은 스스로 가슴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제가 이 속이 편치 못합니다.감히 스스로 속이지 못합니
                 다.”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훗날 고봉정상(孤峰頂上)에서 암자를 짓고 가
                 르침을 크게 드날리리라 여겼는데,오히려 이런 말을 하다니.”

                   설봉스님이 말했다.“제가 실제로 편치가 못합니다.”
                   “ 그대가 실로 그와 같다면 그대의 견처에 대하여 낱낱이 털
                 어놔 봐라.옳은 곳은 내가 그대에게 증명해 주고,옳지 못한
                 곳은 고쳐 주겠다.”
                   설봉스님이 마침내 털어놓기를,“염관(鹽官)스님이 상당(上堂)
                 법문에서 색(色)과 공(空)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보고서
                 깨치는 바가 있었습니다”라 했다.

                   암두스님이 이르기를,“30년까지는 절대로 말을 삼가라”고
                 했다.
                   설봉스님은 다시 말하기를 “동산(洞山)스님의 ‘과수송(過水
                 頌)’을 보고서 깨치는 바가 있었습니다”라 하자,암두스님이 이
                 르기를 “그같이 했다간 자신마저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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