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1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P. 221

벽암록 上 221


                 렵니까?”그러자 위산은 누워 버렸으며,유철마는 곧바로 나가
                 버렸다.그들은 마치 서로 대화한 것 같으나,이는 선(禪)도,도
                 (道)도 아니다.이를 아무것도 일삼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느냐?
                 위산과 오대산과의 거리는 수천 리이다.유철마는 무엇 때문에
                 위산스님에게 머나먼 오대산 재에 가자고 하였을까?말해 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를.

                   이 노파가 위산스님의 말을 알아듣고 실오라기를 당겼다가
                 늦춰 주듯 한 번은 놓아주고 한 번은 거둬 가면서 번갈아 가며
                 주고받았다.이는 마치 두 거울을 마주 비추면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듯,기연마다 서로가 맞고,구절마다 서로 투합하였다.요
                 즈음 사람들은 세 차례나 툭 쳐도 되돌아보질 않는다.그러나
                 이 노파는 조금치도 속일 수 없었다.이는 세제(世諦)로서의 정
                 견(情見)이 아니다.마치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듯,맑은
                 구슬이 손아귀에 있는 듯,붉은 놈이 오면 붉게 보이고 검은 놈

                 이 오면 검게 나타난 것이다.그는 향상(向上)의 일을 알았기에
                 이처럼 한 것이다.요즈음 사람들은 그저 아무것도 일삼지 않는
                 것인 줄로 알고 있을 뿐이다.
                   오조 법연(五祖法演)*스님이 말하였다.“있는 일을 없는 일로
                                     14)
                 만들지 마라.일이란 더러는 없는 일에서 발생한다.”그대들이
                 참구하여 이를 깨치면 그가 이처럼 말했던 것이 여느 사람의
                 대화와도 한가지였음을 알게 된다.언어에 얽매이는 일이 많기

                 에 모르는 것이다.지음(知音)만이 이를 알 수 있다.
                   이는 건봉(乾峰)스님이 대중 법문에서 “하나[第一義諦]를 말
                 할지언정 둘[第二義諦]은 말하지 않는다.한 번 용서해 줬다가
                 는 제이의제에 떨어진다”하니,운문스님이 대중 가운데에서 나


            *원문의 ‘四祖’는 ‘五祖’의 오기인 듯하다.
   216   217   218   219   220   221   222   223   224   225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