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7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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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227


                 았을까?”라고 물었다.이렇게 전후 20여 년 간을 지내 왔으나,
                 끝내 한 사람도 대답한 자가 없었다.이 물음에는 방편도 있고
                 진실도 있고,지혜도 있고 행동도 갖추어져 있다.그의 속셈을
                 알았다면 말해 줄 것이 없다.그대들은 말해 보라,무엇 때문에
                 20여 년 간 이처럼 물었는가를?이는 종사(宗師)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인데,무엇 때문에 언어의 말뚝에 얽매여 있는가?만

                 일 이 경지를 알아차리면 자연히 알음알이에 빠지지 않을 것이
                 다.
                   20 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설명
                 하기도 했고 의견을 붙이기도 하면서 자기가 이해한 바를 드러
                 내기에 온힘을 다하였다.설령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
                 었다 해도 궁극의 자리에는 이르지도 못했을 것이다.비록 이
                 경지는 언구 속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언구가 아니고서는 분별
                 하지 못한다.듣지 못하였느냐?“도란 본디 말이 아니지만 말로

                 인하여 도는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을.그러므로 사람을
                 시험하는 급소는,말이 떨어지자마자 알아차려야 한다.옛사람
                 이 남긴 일언반구(一言半句)는 다름이 아니라,(그 급소를)아는
                 가 모르는가를 보려는 데 있다.
                   암주는 학인들이 알지 못한 것을 보고서 스스로 대신하여
                 “그들이 수행의 도상에서 도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
                 였다.보아라.그는 제대로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이치와 기틀

                 에 계합했다.어찌 종지를 잃었겠는가?옛사람의 말에 “말을 들
                 으면 모름지기 종지를 알아야지,제멋대로 기준을 세우지 마라”
                 하였다.요즈음 사람들은 오로지 한 번 부딪쳐 보고는 그걸로
                 그만이니,심정이야 알겠다만 뻔뻔스럽고 미련한 일임을 어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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