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1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P. 241

벽암록 上 241


                 뜻을 알 수 있겠지만,그렇지 못하다면 여전히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것과 같이 눈멀고 귀 먹을 뿐이다.어느 누가 이러
                 한 경계에 이르렀을까?말해 보라,운문스님이 그 스님에게 대
                 답을 한 것일까,아니면 그에게 화답하여 노래한 것일까?만일
                 그의 말에 대답한 것이라 한다면 저울 눈금을 잘못 읽은 것이
                 요,그에게 화답하여 노래하였다 한다면 완전히 틀린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지 않다면 결국 어떻게 될까?그대가 투철하게
                 알았다면 납승의 코를 살짝이라도 비틀 필요도 없겠지만,그렇
                 지 못하다면 여전히 귀신의 굴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대저 으뜸가는 진리를 펴려면,그것을 온몸에 짊어지고 눈썹
                 이 빠지는 것을 아끼지 말고,호랑이 아가리 속에 몸을 누이고
                 그가 하는 대로 맡겨 두어야 한다.만일 이와 같이 못 한다면
                 어떻게 남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이 스님이 질문을 한 것으로
                 보건대 참으로 고준한 경지라 하겠다.만일 일상적인 일로 보자

                 면 쓸데없는 짓을 하는 스님처럼 보이겠지만,납승의 문하에 의
                 거하여 급소를 본다면 오묘한 경지가 있다.
                   말해 보라,나무가 메마르고 잎새가 지는 것은 어느 사람의
                 경계일까?이는 열여덟 가지 물음[十八問]가운데,주인을 분별
                 하는 물음[辨主問],또는 상황에 견주어 묻는 물음[借事問]이라
                 고 한다.운문스님이 한 실오라기만큼도 꼼짝하지 않고 그에게
                 “가을 바람에 완전히 드러났느니라”고 한 대답은 매우 오묘하

                 며,또한 그 물음을 저버리지도 않았다.생각건대,그 스님의 질
                 문에도 안목이 있었고,그에 대한 대답 또한 명확하였다.
                   옛사람은 “간절히 무엇을 하고자 한다면 물음을 가지고 묻지
                 를 마라”고 말하였다.만일 서로 통하는 사람이라면 말하자마자
                 바로 귀착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대들이 운문스님의 말에
   236   237   238   239   240   241   242   243   244   245   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