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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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41
스님이 허술한 곳을 꼬집어 그에게 내질러 말하기를 “이미 명
백한 속에도 있지 않다면 무엇을 보호하고 아끼겠습니까?”라고
하니,조주스님은 ‘몽둥이’와 ‘할’소리를 전혀 쓰지 않고 “나도
모른다”라고 말했을 뿐이다.만일 이 늙은이(조주스님)가 아니
었다면 내지름을 당하고는 반드시 쩔쩔맸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이 늙은이는 자유자재로 몸을 비낄 수 있어서 이처럼 그에게
답변한 것이다.
요즈음 선승들은 질문했다 하면 “나도 모른다 몰라”라고들
하지만 조주스님과 길은 같아도 그 내용이 다른 걸 어찌하랴!
그 객승은 그래도 기특하여 대뜸 묻기를 “스님께서 모르신다면
무엇 때문에 ‘명백한 속에도 있지 않느니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니,보기 좋게 다시 콱 내지른 것이다.만일 다른 사람이었더
라면 반드시 이를 분간하지 못했을 것이다.조주스님은 훌륭한
작가 선지식이라,스님에게 말하기를 “묻는 일이 끝났으면 절
올리고 물러가라”하니,이 객스님도 역시 이 늙은이를 어찌하
지 못하고 숨을 들이쉰 채 찍소리 못 한 것이다.
그는 훌륭한 솜씨를 갖춘 종사(宗師)이시다.현묘한 말이나
상황[機緣]이나 경계를 의논하지 않고,한결같이 본분의 일로써
사람을 대했던 것이다.그러므로 “욕을 하려거든 해라.욕하는
주둥이 모자라지 않게 새 주둥이까지 빌려다 달아 주련다.침
뱉으려면 뱉어라.침이 모자라지 않게 물까지 퍼다 주리라”라고
하였다.이 늙은이가 평소에 ‘몽둥이’와 ‘할’소리로써 사람을 교
화하지 않고 일상적인 말로 교화했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그
러니 세상 사람인들 어찌하랴!그는 평소에 잡다한 계교(計較)
가 없었으므로 종횡으로,역행(逆行)으로,순행(順行)으로 자유자
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