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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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일 하나하나 알음알이를 지으면 온 누리에 부처의 종족을
멸망시킬 놈이다.다만 혜초(慧超)선객이 여기에서 깨달았던
것은 그가 평소에 항상 참구하였기에,한마디 말에 마치 통 밑
바닥이 빠져 버린 것처럼 통한 것이다.
그런데 감원 소임을 보던 현칙(玄則)스님은 법안스님의 회중
(會中)에 있으면서도 입실(入室)하여 법문을 청했던 적이 없었
다.하루는 법안스님께서 그에게 물었다.
“측감원아,어찌하여 입실하지 않느냐?”
“ 스님은 왜 모르십니까?저는 청림(靑林)스님의 처소에서 이
미 한 소식했습니다.”
“ 네가 그때에 했던 말을 한번 나에게 말해 보아라.”
“ 제가 ‘무엇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었더니,청림스님은 ‘병
정동자(丙丁童子)가 불을 구하는구나’하고 말하였습니다.”
“ 좋은 말이다만 네가 잘못 알았을까 염려스럽구나.다시 한
번 설명해 보아라.”
“ 병정(丙丁)은 불[火]에 해당하니 불로써 불을 구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제가 부처인데도 다시 부처를 찾은 것과 같습니다.”
“ 감원아,과연 잘못 알았구나.”
측감원은 그 말에 불복하고는 곧장 일어나 홀로 강을 건너가
버렸다.이에 법안스님께서 “이 사람이 만일 되돌아온다면 구제
할 수 있지만,오지 않는다면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는
데,측감원이 중도에서 스스로 곰곰이 헤아려 보니,‘그 분은
오백 인을 거느리는 선지식이신데 어찌 나를 속이겠느냐’고 뉘
우치고 마침내 되돌아와 다시 참방하자,법안스님이 말씀하셨
다.
“네가 나에게 물어라.내,너를 위해 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