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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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103
무리 수완[機關]이 있다 하더라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
는 것이다.설두스님은 그가 따귀를 친 것을 칭찬했지만 손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천상․인간도 전혀 모르나니,눈 속,귓속까지 끊긴 듯 맑고
시원하여라”하였는데,눈[眼]속에도 눈[雪],귓속에도 눈[雪]이
라는 것이니,이는 평등한 상태에 머무른 것이다.이를 ‘보현경
계(普賢境界)의 절대평등’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한 덩어리가
됐다’라고도 한다.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곧바로 온 천하에 실오라기만큼의 허물이 없다 해도 오히려
외물에 휘둘리는 것이며*,한 경계도 보지 않았다 해도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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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제창한 것이다.온전히 제창하려 한다면 반드시 끝없이 초
월하는 길[向上一路]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이르러선 눈앞에 대용(大用)이 나타나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남의 명령에 놀아나지도 않아야 한다.그러므로
“그는 활구를 참구하지,사구를 참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구절의 깨달은 말일지라도 만 겁토록
속박하는 말뚝이로다.무슨 쓸모가 있겠는가?”라 했다.
설두스님이 이쯤에 노래를 마치고 다시 기틀을 돌려,“씻은
듯 끊김이여,파란 눈 달마라도 알아차리기 어려우리”하였으
니,달마스님이라도 분별하기 어렵다는데 산승더러 무얼 말하
라고…….
*외물에 휘둘리다:삼성본에는 ‘물전(物轉)’이라고 되어 있으나,당본에는 ‘전구(轉
句)’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