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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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109
아니니 하는 말[垂手不垂手]이 있다.세간에 나오지 않으면 하
늘을 우러르지만,세간에 나오면 벌써 더러운 재 묻고 흙 묻는
꼴이다.하늘을 우러르는 것은 곧 만 길 봉우리에 서 있는 것이
며,머리에 재가 묻고 얼굴에 흙이 묻는 것은 이러쿵저러쿵 지
도를 한 꼴이다.어느 때는 머리에 재 묻고 얼굴에 흙 묻은 채
로 만 길 봉우리에 서기도 하고,어느 때는 만 길 봉우리에 선
것이 곧 머리에 재가 묻고 얼굴에 흙이 묻는 꼴이다.그러나 실
은 저자에 들어가 방편을 부린 것이나 높은 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다.본원으로 돌아가 성품을 깨친 것과 세
간의 지혜[差別智]는 차이가 없으니,이를 서로 다르다고 알아
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손을 드리우면 그대로 만 길 벼랑과 같다”고 하였
다.이는 곧 발붙일 곳이 없는 것이다.“굳이 정위이니 편위이
니 따질 것이 있겠는가”라 한 것은,작용할 때 저절로 이와 같
이 되는 것이지 이리저리 따져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이는 동산스님의 대답을 노래한 것이다.
뒤이어 말한 “옛 유리궁전에 비치는 밝은 달이여!우습게도,
영리한 사냥개가 괜스레 섬돌을 오른다”는 것은,바로 이 스님
이 말에 휘둘리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조동종에서는 “애 못 낳는 여자[石女]․나무로 만든 말[木馬]
․밑 빠진 바구니[無底籃]․야명주(夜明珠)․죽은 뱀[死蛇]따
위의 18가지의 얘기가 있다.이는 대부분 정위(正位)를 밝힌 것
이다.옛 유리궁전에 비치는 달은 둥그런 그림자가 있는 듯하
다.
동산스님은 “왜 추위나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고
대답했는데,이는 그 스님이 마치 사냥개가 흙덩이를 좇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