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P. 113

벽암록 中 113


                   일숙각(一宿覺)영가스님은 “나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쌓았
                 으며 또한 일찍이 주소(注疏)와 경론(經論)을 탐구하였다”고 하
                 였다.익히고 배우는 것을 다하였을 때 그것을 일러 더 배울 것
                 이 없는 하염없이 한가한 도인[無爲閑道人]이라 한다.더 배울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도에 가까워진다.바로 이
                 두 배움과 배울 것이 없는 것을 초월하는 것을 참된 초월이라

                 한다.
                   그 스님도 꽤나 총명하다 하겠다.스님이 이 말을 들어 화산
                 스님에게 묻자 화산스님은 “북을 두드릴 줄 알지”라고 하였다.
                 이는 이른바 ‘아무 맛도 없는 본바탕의 맛’을 말한 것이다.공
                 안을 밝히려면 반드시 끝없이 초월해 가는 사람[向上人]이어야,
                 이 말이 이치와도 관계없고 따져 볼 수도 없는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마치 통 밑바닥이 빠져 버린 것처럼 되리라.바로
                 이 자리가 납승이 이르러야 할 곳이며,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

                 에 계합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의 공 굴림[輥毬]과 화산스님의 북 두드림[打鼔]과
                 혜충국사의 수완(水碗)과 조주스님의 차 마심[喫茶]은 모두가
                 향상을 제창한 것이다.”
                   또 “어떤 것이 참다운 이치[眞諦]입니까?”라고 묻자,화산스
                 님은 “북을 두드릴 줄 알지”라고 하였다.참다운 이치에서는 결

                 코 하나의 법도 세우지 않았지만,세속의 이치[俗諦]에는 만물
                 이 모두 갖춰져 있다.참다운 이치와 세속의 이치가 서로 다르
                 지 않음을 아는 것이 으뜸가는 뜻[聖諦第一義]이다.또다시 “마
                 음이 곧 부처라 함은 묻지 않겠습니다.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북을 두드릴 줄 알지”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