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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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종횡무진하는구나.하늘을 뒤덮는 그물을 쳤다.조주
스님의 뜻을 보았느냐?일찍이 납승의 급소를 움켜쥐었군.조주스님
의 귀착점을 알았느냐?이를 볼 수 있다면 천상천하에 나만이 홀로
존귀할 것이다.물이 흐르니 강이 만들어지고 바람이 부니 풀잎이 휩
쓸린다.만약 그렇지 못하면 노승(조주스님)이라도 그대의 발밑에 있
으리라.
평창
만일 일격(一擊)에 대뜸 갈 곳을 알면 천하 큰스님들의 급소
를 일시에 뚫어 버리더라도 그대를 어찌할 수 없으리라.자연히
물이 흐르면 강을 이루겠지만,그렇지 못한다면 조주 노승이 발
밑에 있을 것이다.
불법의 핵심은 번잡스러운 언어 속에 있지 않다.이는 마치
그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고 묻자,“내가 청주에 있으면서 무명
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하고 말한
것과 같다.만일 어구(語句)에서 이를 분별한다면 저울 눈금을
잘못 읽은 것이며,그렇지만 어구에서 분별하지 않았다면 어떻
게 이처럼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 공안은 보기[見]는 어려워도 알기[會]는 쉬우며,알기는
쉬워도 보기는 어렵다.어렵기로는 은산철벽이요,쉽기로는 곧
바로 뚜렷하여 계교한다거나 시비할 수가 없다.이 말은 보화
(普化)스님의 “내일 대비원(大悲院)에서 재(齋)가 있다”라는 말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 뜰 앞의 잣나무니라.”
“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설명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