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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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141
“모르겠습니다.”
“ 나의 뜻도 모르면서 무슨 부처의 뜻을 말하겠는가?”
왕태부와 낭상좌의 대화는 한결같지 못하다.
설두스님이 맨 끝에서 “그 당장에 차 달이는 화로를 밟아서
엎어 버렸어야지”라고 말하였는데,명초가 그처럼 하기는 했지
만 결코 설두스님만은 못하였다.
설봉스님이 동산스님의 회하에 있으면서 밥 짓는 일을 하였
는데,하루는 쌀을 씻고 있을 즈음에 동산스님이 물었다.
“무얼 하느냐?”
“ 쌀을 일고 있습니다.”
“ 쌀을 일어 모래를 버리느냐,모래를 일어 쌀을 버리느냐?”
“ 모래와 쌀을 일시에 모두 버립니다.”
“ 대중들은 무얼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그러자마자 쌀 일던 단지를 쏟아 버리자,동산스
님은 말하였다.
“너의 인연은 이곳에 있지 않다.”
그렇긴 하지만 설두스님이 말한 “그 당장에 차 달이는 화로
를 엎어 버렸어야 했다”는 말과 같을 수 있겠는가?설봉스님과
설두스님이 한 행위들은 모두 어떠한 시절인연들일까?그들의
용처(用處)에 이르면 반드시 고금에 뛰어나 팔팔 살아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송은 다음과 같다.
송
다그쳐 물어 오는 것이 찬바람이 일듯 하였지만
-헛 화살을 쏘지 않았다.가끔씩은 모양새를 갖추지.참으로 오묘하구
나.
그 대처함은 훌륭한 솜씨가 못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