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P. 155
벽암록 中 155
스님이 지난날에 했던 대화를 말씀드리자,
-결국은 이런 꼴이 되고 마는군.거듭거듭 잘못하는구나.
암두스님이 말하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냐?”
-바로 때려 쳤어야 옳지.콧구멍(급소)을 잃어버렸다.
“설봉스님은 아무런 말씀 없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또 졌구나!그대들은 말해 보라,설봉스님이 뭐라고 했는지를.
“아-아,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일러주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큰 파도는 아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그에게 일러주었더라면 천하 사람들이 설봉스님을 어찌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문둥이가 짝을 끌고 가는구나.꼭 그렇지 않다.수미산이라도 부서질
것이다.말해 보라,그의 올가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그 스님이 여름 안거[夏安居]끝에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추어내어 법문을 청하였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도적이 가버린 지 한참 되었다.도적
이 떠난 뒤에 활을 당기는 격이군.
“왜 진작 묻지 않았느냐?”
-선상(禪床)을 들어 엎어 버렸어야 옳았다.벌써 지나가 버렸다.
“감히 쉽게 여쭙지 못했습니다.”
-이 방망이를 이 스님에게 먹였어야 한다.콧구멍을 뚫어 버렸다.(하
안거 동안)감옥 속에 틀어박혀 못된 지혜만 키웠구나.두 번 거듭된
잘못이다.
“설봉스님이 나와 한 가지(덕산스님의 제자이므로)에서 나기는
했으나,나와 똑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