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P. 171
벽암록 中 171
에게 귀의하여 20년 간 시자를 하였다.그런 뒤에 다시 참방하
였을 때의 일할(一喝)에 처음으로 크게 깨쳤다.요즈음 어떤 사
람은 “본디 깨달을 것이 없는데도 깨닫는 문을 괜히 만들어 이
런 짓을 했다”고 말들 하나,이러한 견해는 마치 사자 몸에 있
는 벌레가 사자의 살을 갉아먹는 것과 같다.듣지 못하였느냐,
옛사람[管子]이 말하기를,“원천이 깊지 않으면 멀리까지 흐르
지 못하고 지혜가 크지 못한 자는 멀리 보지 못한다”고 한 것
을.만일 깨침이 없는 데서 괜히 이런 일을 만든 것이라 한다면
어떻게 오늘날까지 불법이 전해 올 수 있었겠는가…….
살펴보면,마조스님과 백장스님이 길을 가다가 날아가는 들
오리를 보았는데,마조스님인들 들오리임을 왜 몰랐겠는가?그
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처럼 물었을까?말해 보라,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을까?
백장스님은 오로지 그의 뒤를 따라 걸었을 뿐이다.마조스님
이 마침내 그의 콧구멍을 비틀자 백장스님이 고통을 참지 못하
고 신음하니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뭐 날아가 버렸다고?”
이에 백장스님은 단박에 깨쳤다.지금도 어떤 사람은 이를
잘못 이해하고 이 이야기를 물어보면 ‘아야,아야!’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좋아하시네.뛰어넘질 못하는군.
종사께서 사람을 지도함에 모름지기 철저하게 가르친다.그
가 깨치지 못했음을 알고서는 칼날을 상하고 손을 다치면서도
그만두질 않았다.요는 백장스님이 ‘이 일’을 깨치도록 지도하
는 데 있다.깨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대로 사용하
겠지만 깨치지 못하면 세속 이치[世諦]에 말려들게 되는 것이다.
마조스님이 그 당시 코를 비틀지 않았더라면 세속 이치에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