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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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들게 되었을 것이다.모름지기 경계와 외연을 만나면 확 뒤집
어서 자기에게로 귀결시켜 온종일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는 그것을 ‘성품의 자리[性地]가 명백하다’고 한다.다만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거나 (마치 종놈이)나귀 앞에 섰다가 말 뒤
에 섰다가 하는 것 같은 (주체적이지 못한)알음알이가 무슨 쓸
모가 있겠는가.
마조스님과 백장스님의 이와 같은 기용(機用)을 살펴보면 밝
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한[昭昭靈靈]듯하나,그렇다고 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한 곳에 안주하지는 않는다.백장스님이
아픔을 참느라 신음소리를 냈다.만일 이를 알아차리면 온 세상
어디에도 감추지 못하고 사물마다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그러
므로 “한 곳에 투철하면 천곳 만곳이 단박에 뚫린다”고 한다.
마조스님이 그 이튿날 상당법문을 하였는데 대중들이 모이자
마자 백장스님이 나와서 방석을 말아 버리니 마조스님은 곧 법
좌에서 내려와 방장실로 돌아가면서 백장스님에게 물었다.
“내가 아까 상당 설법도 하지 않았는데 너는 무엇 때문에 방
석을 말아 버렸느냐?”
“ 어제 스님에게 코끝을 비틀린 아픔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 너는 어제 어느 곳에 마음을 두었느냐?”
“ 오늘은 코끝이 아프지 않습니다.”
“ 너는 ‘오늘의 일’을 훤히 알았구나.”
백장스님이 이에 절을 올리고 곧장 시자실로 돌아가 통곡을
하자,함께 일하는 시자가 물었다.
“그대는 왜 통곡을 하느냐?”
“ 그대가 큰스님을 찾아가 물어보아라.”
시자가 마조스님을 찾아가 묻자 마조스님은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