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0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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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
                -용이 우니 안개가 피어나고 호랑이가 휘파람을 부니 바람이 이는구
                 나.모자를 사고 나서 머리 치수를 잰다.노파심이 간절하구나.

               “왜 말로 못 합니까?”
                -빗나가 버렸다.예상을 했지만,잘못 알았군.
               “말로는 안 되지!말로는 안 되지!”
                -더러운 물을 대뜸 끼얹는다.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볍지만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돌아오는 길에
                -정신을 바짝 차려라.
               점원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어서 말해 보시오.말하지 않는다면 치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귀 뚫은 사람[穿耳客:달마스님]은 만나
                 기 어렵고 뱃전에 칼 잃은 곳을 새긴 자[刻舟人]는 많구나.이같이
                 어리석은 놈은 쏜살처럼 지옥에 빠진다.
               “때리려면 때려라.그러나 말은 할 수 없다.”
                -두번 세번이라도 일을 정중히 해야지.쳐라!이 늙은이가 온몸에 흙
                 탕물투성이가 되었군.처음 먹은 마음을 고칠 수야 있나!
               점원스님이 후려쳤다.
                -잘 쳤다.말해 보라,그를 쳐서 무엇 하려고 했는가를.억울한 매는
                 원래부터 맞을 놈이 따로 있었는데…….
               그 뒤 도오스님이 돌아가시자 점원스님이 석상(石霜)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얘기를 말하니,
                -다 알고서도 한 번 해본 거지.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으나 옳다면 매
                 우 기특한 일이다.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살아도 말로 못 하고 죽어도 말로는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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