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6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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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이 스님은 조주스님의 논리의 틈새를 끄집어내어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질문한 것은 참으로 기특하지만,이는 마음의
사량분별로 그렇게 한 것이니 어찌하랴.조주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스님의 물음에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지만,조주
스님은 작가였으니 어찌하겠는가.
“왜 이 말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고 하자 이 스님 또한 몸
을 비키고 숨을 쉴 줄 알았기에 대뜸 “제가 여기밖에 못 외웁
니다”라고 했다.이는 교묘하게 말을 꾸민 것이라 하겠다.조주
스님은 그가 말했던 대로 그대로 말했지만 마음으로 사량분별
하지는 않았다.
옛사람(동산스님)은 “끊임없이 이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하였다.그는 용과 뱀을 분별하고 길흉을 구별하였으니 그 또
한 본분의 작가이다.
조주스님은 이 스님의 눈동자를 바꿔 버리면서도 칼끝에 조
금도 흠을 내지 않았으며 사량분별을 하지도 않고 저절로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여러분은 말을 했다고 해도 안 되고 말을
안 했다고 해도 안 되며,하지도 않았고 안 하지도 않았다고 해
도 안 된다.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은 것이다.무
엇 때문인가?‘이 일’을 의논하려면 번뜩이는 전광석화처럼 단
박에 착안해야만이 볼 수 있으며 머뭇거리거나 주저(躊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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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무슨 말을 하느냐?몹시 심오하고 원대하다.어찌 함께 말할 것이 있
*躊蝫:앞 자의 음은 疇,뒷 자의 음은 除이다.우물쭈물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