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3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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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233


                 면 끝을 알고 거량하자마자 의도를 알았던 것이다.남전스님이
                 저녁 때 다시 앞에 했던 이야기를 꺼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주스님은 노련한 작가였기에 대뜸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가 버리자,남전스님은 말하였다.
                   “네가 그때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말해 보라,참으로 살릴 수 있었을까,그렇지 않았을까?

                   남전스님이 말한 “말할 수 있다면 고양이를 베지 않겠다”는
                 것은 번뜩이는 전광석화와 같은 것이다.
                   조주스님이 대뜸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가 버린
                 것은 활구를 참구하고 사구를 참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날마
                 다 새롭고 시각마다 새로워,(이 자리는)일천 성인이라도 한
                 실오라기만큼도 바꾸지 못한다.모름지기 자기 자신 속에 (원래
                 부터 갖추어져)있는 보배에서부터 우러나와야 조주스님의 온
                 전한 기틀과 큰 작용[全機大用]을 알 수 있다.

                   조주스님이 “나는 법왕이 되어 모든 법에 자재하다”라고 했
                 는데,모두가 잘못 이해하고서 “조주스님은 방편으로 짚신을 가
                 지고 고양이를 대신했다”고 하며,어떤 사람은 “그가 ‘말할 수
                 있다면 고양이를 베지 않겠다’는 말을 할 때 대뜸 짚신을 이고
                 나갔어야 했다.이는 그(남전스님)가 고양이를 벤 것이지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고 해석을 하나,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며
                 오로지 망상분별을 한 것일 뿐이다.이 어른들의 뜻이란 널리

                 하늘을 덮고 두루 땅을 떠받들어 주는 것과 같음을 모른 것이
                 라 하겠다.
                   이들의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의기투합하여 기봉(機鋒)이 일치
                 되므로 저쪽에서 처음을 거량하면 바로 끝을 알았는데,요즈음
                 의 학자들은 옛사람의 몸을 비꼈던 곳[轉身處]을 모르고 부질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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