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2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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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秦王)과 인상여(藺相如)모두가 목숨을 잃었구나.
외도는 (자신의 본성을)거머쥐고 주인 노릇을 하여 꼼짝하
지 않았다고 하겠다.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하면,그가 말하기
를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
다”라고 했기 때문이다.이 어찌 온전한 기봉이 있는 곳이 아니
겠는가?
세존께서는 풍향에 따라 돛을 걸고 병에 따라 약을 투여할
줄 아셨기에 한참 말없이 계시면서 온전한 기틀을 드러내셨다.
이에 외도는 이를 모두 이해하고 기틀 바퀴[機輪]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유(有)로 향하지도 않고,무(無)로 향하지도 않았으며,
얻고 잃음에도 떨어지지 않았고,범부와 성인의 경지에도 얽매
이지 않아,양쪽을 일시에 꼼짝 못 하게 했던 것이다.
세존께서 한참 말없이[良久]계시자마자 그는 바로 절을 올
렸다.요즈음 사람들은 무(無)에 떨어지지 않으면 유(有)에 떨어
져 오로지 유(有)․무(無)에 머무르고 만다.
설두스님의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으니,당장에 어여
쁘고 추함을 분간하도다”라는 말은,꼼짝하지 않고 한참 말없이
있었을 뿐인데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린 것처럼 삼라만상의 모
습이 이 거울을 피해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도는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 주시어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말해
보라,외도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모두 스스로 참구하고 스스로 깨
달아야 하는 것이다.그러면 어디에서나 행주좌와에 높낮이를
묻지 않아도 단박에 그대로 나타나 다시는 한 실오라기만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