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7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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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247
덕산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용아스님이 그 뒤 이
일을 동산(洞山)스님에게 얘기하자 동산스님은 말하였다.
“덕산이 당시에 무어라고 말하던가?”
“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 그가 말이 없었던 것은 그만두고 떨어진 덕산스님의 머리를
나에게 가져와 보게.”
용아스님은 이 말에 완전히 깨닫고 마침내 향을 사르면서 멀
리 덕산스님을 바라보고 절을 올리며 참회하였다.
어느 스님이 덕산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이 일을 전하자 덕산
스님은 말하였다.
“동산 늙은이가 좋고 나쁜 것도 구별할 줄 모르는군.이놈이
죽은 지 한참 지났는데 구해 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이 공안을 살펴보면 용아스님의 경우와 매한가지이다.덕산
스님이 방장실로 되돌아가 버렸던 것은 곧 어둠 가운데서 가장
현묘한 것이었다.암두스님이 크게 웃었는데,그의 웃음 속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누구나 이를 알 수 있다면 천하를 누빌 것
이다.스님이 그 당시 알 수만 있었다면 천고 이후에도 계속되
는 꾸지람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암두스님의 문하에서 이미
한바탕 틀려 버렸다.
이를 살펴보면 설봉스님은 암두스님과 동참(모두 덕산스님의
제자)이기에 곧 귀결점을 알고 있었으나 그에게 말해 주지 않
고 서른 방망이를 두들겨서 절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이는 전
무후무의 경지라 할 만하다.이는 작가 납승의 면목을 나타내어
사람을 지도하는 솜씨이다.그에게 이렇게 해주지 않고서야 어
떻게 그 스스로가 깨닫겠는가?본분종사는 사람을 지도하되,어
느 때는 꼼짝도 못 하게 가두어 놓기도 하고 어느 때는 놓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