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8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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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쩔 줄 모르게 만들어 깨닫도록 해주었다.
저토록 대단하신 암두․설봉스님은 거꾸로 밥통 같은 선객
에게 감파를 당하였다.암두스님이 “황소가 지난 뒤에 칼을 주
었느냐?”고 하였는데,여러분은 말해 보라,여기에서 무슨 말을
해야 그의 웃음을 면할 수 있으며,또한 설봉스님의 방망이에
쫓겨남을 면할 수 있을까?이 깐깐한 화두를 몸소 깨닫지 못한
다면 설령 입으로 통쾌하고 날카롭게 말하여 구경(究竟)의 경지
에 이른다 하여도 투철하게 생사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산승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이 기관(機關)이 전변하는 곳을
살펴보게 하였다.만약 머뭇머뭇 헤아린다면 멀고도 먼 이야기
이다.듣지 못하였느냐?투자(投子)스님이 연평(延平)스님에게
물었던 것을.투자스님이 “황소가 지난 뒤에 칼을 주었느냐?”고
묻자,스님이 손으로 땅을 가리켰다.투자스님은 “30년 동안 마
부 노릇을 하였지만 오늘 도리어 나귀한테 들이받혔구나”라고
말했다.
살펴보면 이 스님은 참으로 작가였다.“주었다”고 말하지도
않고 “줍지 못했다”고도 말하지 않았으니,서울[西京]의 스님네
와는 저 바다 건너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진여(眞如)스님은 이를 염(拈)하여 말하였다.
“옛사람은 하나(투자스님)는 우두머리가 되고 하나(이 스님)
는 꼴찌가 되었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황소가 지난 뒤에 칼을 주었다는데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라고.무슨 쓸모가 있겠는가?이는 다만 주석으
로 만들어진 (물렁한)칼 한 자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