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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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27


                -적나라하여 말끔하구나.자신도 편안하고 바다와 강물까지도 평온하
                 다.

               고책(古策:지팡이)의 가풍이 열두 대문보다도 높은데
                -어찌 이 같으랴.주장자에는 눈이 없다.절대로 주장자 위에 살림살
                 이를 하지 마라.
               문마다 (장안에 이르는)길 있건만,텅 비어 쓸쓸하네.
                -한 물건도 없구나.그대들의 평상심[平生]을 속였다.곁눈질했다 하면
                 장님이 되리라.
               쓸쓸하지 않음이여!
                -그러면 그렇지!몸을 돌릴 곳이 있었기 망정이지,벌써 장님이 되었
                 군.(원오스님은)후려쳤다.
               선지식은 병 없는 약을 잘 사용하느니라.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하루종일 무엇 때문에 졸고
                 있는가?하늘을 휘젓고 땅을 더듬어 무엇 하려고?


               평창
                   이 송은 덕산스님이 위산스님을 친견했을 때의 공안과 같다.
                 먼저 공안을 가지고 두 전어(轉語)에 착어하여 하나로 꿰어 놓

                 은 뒤에 송을 한 것이다.“이래도 ‘틀렸다’,저래도 ‘틀렸다’,절
                 대로 말하지[拈]마라”고 하였는데,설두스님이 말한 뜻은,이곳
                 에서도 한 번 틀렸고 저곳에서도 한 번 틀렸으니 절대로 말하
                 지 마라는 것이다.말하면 틀린다.모름지기 이처럼 두 번의
                 ‘틀렸다’는 말을 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해의 물결은 잔잔하며,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는 것
                 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경지라 하겠다.그대가 만일 이 두 번

                 의 “틀렸다”라는 데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눈꼽만큼도 일삼을
                 것이 없을 것이다.산은 산,물은 물이며,긴 것은 긴 대로,짧
                 은 것은 짧은 대로이다.닷새 만에 바람 한 번 불고 열흘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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