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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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 번 내리는 태평성대가 될 것이다.그러므로 “사해의 물결
이 잔잔하고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는 것이다.
뒤이어 마곡스님이 석장을 지녔던 것을 노래하여 “고책의 가
풍이 열두 대문보다 높다”하였는데,옛사람은 (말을 때리는)
채찍을 책(策)이라 하지만 납승가에서는 주장자를 책(策)이라 한
다( 祖庭事苑 에서는 古策을 錫杖이라 하였다).서왕모(西王母)
선녀의 요지(瑤池)위에는 열두 개의 붉은 문이 있다고 한다.
고책(古策)이란 곧 주장자인데,주장자로 인해 일어난 맑은 바
람이 열두 대문보다도 높다는 것이다.천자와 제석천왕(帝釋天
王)이 거처하는 곳에도 각각 열두 개의 붉은 대문이 있다고 한
다.두 번의 “틀렸다”는 말을 알 수 있다면 주장자의 끝에서 빛
이 발생하여 고책 또한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옛사람(분양 선소스님)의 말에 “주장자를 알면 일생에 참구
했던 일[參學事]을 끝마친다”하였고,또 (영가스님은)“이는 모
양을 내느라 괜히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여래의 보배 지팡
이를 몸소 본받음이다”고 하니,이와 같은 유이다.여기에 이르
러서는 일곱 번 자빠지고 여덟 번 넘어지더라도 언제나 완전한
자재(自在)를 얻을 것이다.
“문마다 길 있건만,텅 비어 쓸쓸하네”라고 한 것은,길이 있
기는 하나 쓸쓸히 텅 비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설두스님이
여기에 이르러 스스로의 잘못을 알고,다시 그대들에게 이를 다
파해 주었다.그렇지만 그래도 쓸쓸하지만은 않은 곳이 있다.
만일 작가 선지식이라면 병이 없을 때 먼저 약을 써야 하는 법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