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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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31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우리 세 사람이 일부러 찾아가 뵈려고 하였더니만 복이 없
어 이미 돌아가시고야 말았구려.도대체 스님께서 살아 계실 때
무슨 말씀이 있었습니까?상좌께서는 한두 칙(則)만 거량해 주
십시오.”
정상좌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거량하였다.
임제스님이 하루는 대중 설법을 하셨다.
“여러분의 몸뚱이 속에 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있다.그는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 출입하고 있으니 아직 깨닫지 못한
자는 살펴보아라.”
그때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무엇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스님은 대뜸 스님의 멱살을 잡고서 “말해 보라,말해
봐”하였는데,스님이 머뭇거리자 밀어 제쳐 버리고 말하기를
“무위진인이 이 무슨 마른 똥덩어리냐?”하고 곧 방장실로 되
돌아가 버렸다.
이에 암두스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쑥 빼물었다.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왜 무위진인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정상좌는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서 “무위진인과 무위진인이
아닌 것은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빨리 말해라,빨리!”라고 하
니,흠산스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누르락푸르락
하였다.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은 가까이 앞으로 다가서서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이 수계한 지 얼마 안 되는 중이 좋음과 나쁨을 모르고서
상좌의 비위를 거슬렸으니 자비로써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