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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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37
“어떻게 아닌 줄을 아십니까?”
“ 가까이 다가오면 그대에게 판별해 주겠다.”
스님들이 누각 앞에 이르렀을 때 진조는 갑자기 “학인스님
들!”하고 불렀다.스님들이 머리를 쳐들자 상서는 여러 관원들
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오로지 운문스님 한 명만은 진조상서가 감파하려 해도 못 했
으니,목주(睦州)스님 밑에서 참선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자복스님을 떠보러 가자 자복스님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대뜸 일원상을 그려 보였다.자복스님은 위산스님․앙산
스님 회하의 큰스님이다.평소 상대가 사는 고장의 경치나 물건
[境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사람을 제접하기를 좋아
하였다.진조를 보자마자 일원상을 그려 보였지만 진조 또한 작
가였으니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그는 속지 않고 스스로 점검
하여 말하였다.“제자가 이렇게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일원상
을 그리시어 어찌하자는 것입니까?”이에 자복스님이 문을 닫
아 버렸는데,이러한 공안을 언어 가운데에서 표적을 분별하고
구절 속에서 기틀을 감춰 두었다고 한다.
설두스님은 “진조는 한쪽 눈만을 갖추었을 뿐이다”라고 말하
였다.설두스님이야말로 정수리[頂門]에 일척안을 갖춘 분이다.
말해 보라,이 뜻이 어디에 있는가?이 일원상을 주었어야만 했
다.모두 이와 같이 한다면 납승들이 어떻게 사람을 지도할까?
나는 그대들에게 묻노니,당시에 그대가 진조였다면 무슨 말을
했어야 설두스님에게 “그대는 한쪽 눈밖에 갖추지 못했다”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때문에 설두스님은 이를 뒤집어 송
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