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P. 45
벽암록 中 45
였다.그는 언제나 디딜방아를 밟으면서도 밟는 것마저 까마득
히 잊었었다.어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석실행자는 밟는 것마저 잊고 있으니 그 뜻은 무엇입니까?”
“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느니라.”
법안(法眼)스님은 원성실성송(圓成實性頌)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치가 다하고 알음알이마저 잊는데
어찌 비유조차 있겠는가.
필경 서리 내리는 밤
달은 고스란히 앞 시내에 떨어지네.
과일이 익으니 원숭이 따라 살찌고
산이 깊으니 길이 아득하구나.
고개를 들어 보니 낙조가 지는데
원래부터 서방에 살았었구나.
설두스님은 말하기를,“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한산자를.너무
나 일찍 길을 떠나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왔던 옛길
마저 잊어버렸구나”하였다.한산자의 시에서는 이렇게 노래했
다.
몸 쉴 곳을 얻고자 하는가.
한산(寒山)을 길이 보존하오.
산들바람 그윽한 소나무를 스치니
가까이 들을수록 더욱 좋아라.
그 아래 초로(初老)의 늙은이가
술술 불경을 읽는다.
십 년이 되도록 돌아가질 못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