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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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가 깨끗하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기는가?”
                   이것들은 결코 그저 거듭해서 염(拈)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이다.
                   애꾸눈 명초 덕겸(明招德謙)스님도 그 뜻에 대해서 노래하였
                 는데,하늘과 땅을 덮는 기봉이 있었다.

                     사바세계 두루두루 훌륭한 가람

                     어디를 보아도 문수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이네.
                     그 말에서 부처의 눈을 열 줄 모르고
                     돌아서서 그저 푸른 산 바위만 바라보네.

                   “사바세계 두루두루 훌륭한 가람”이란 잡초더미를 절로 화현
                 시킨 것을 가리킨 것이다.이는 이른바 권(權),실(實)을 모두 행
                 하는 기용(機用)이 있다 하겠다.
                   “어디를 보아도 문수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이네.그 말에

                 서 부처의 눈을 열 줄 모르고,돌아서서 그저 푸른 산 바위만
                 바라보네”라고 하였는데,바로 이럴 경우 문수․보현․관음의
                 경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그래도 결국 말로만 이러니저러니
                 한 것은 아니다.설두스님은 명초(明招)스님의 것을 고쳐 쓰되
                 면밀한 점이 있다.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른데”라고 하였는데,결
                 코 칼끝에 손을 다치지 않고,구절 속에 방편과 실상이 함께 있

                 으며,이(理)와 사(事)가 있었다 하겠다.
                   “문수와 이야기하였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오”라고 하
                 였는데,하루 밤새껏 이야기하고서도 문수를 몰랐었다.그 후
                 무착이 오대산에 전좌(典座)로 있었는데,문수는 늘 죽 끓이는
                 솥 위에 나타났다가,무착이 휘두르는 죽을 젓는 주걱에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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