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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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없다.만물을 모두 모아 자기로 삼는 자가 어찌 성인뿐이
겠는가?”라고 하였다.신(神)․사람․현인․성인이 각기 다르지
만 모두가 같은 성품과 같은 바탕을 지녔다.
옛사람(덕산 연밀스님)의 말에 “온 건곤의 대지가 나 하나에
갖추어져 있을 뿐이다.추우면 온 천지가 모두 춥고,무더우면
온 천지가 모두 무더우며,있으면 온 천지에 널리 있고,없으면
온 천지에 전혀 없으며,옳으면 천지가 모두 옳고,그릇되면 온
천지가 모두 그릇된다”고 하였으며,법안(法眼)스님은 “그는 그
가 그이고,나는 내가 나이다.동서남북이 모두 옳다고 하건 옳
지 않다고 하건,다만 나만이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할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
다.석두(石頭)스님은 조론 을 보다가 “만물을 모두 모아 자기
로 삼는다”는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치고 그 뒤 참동계(參同
契) 를 저술하였는데,이 또한 이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이 같은 물음을 살펴보건대,말해 보라,무슨 뿌리가 같
으며 어느 바탕과 같은가를.이쯤 되면 기특하다고 할 만하다.
이는 여느 사람들이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과 같은가?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었을까?육긍대
부의 이러한 물음은 매우 기특하기는 하지만 교학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만일 교학의 이치를 지극한 법[極則]이라
한다면,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어 보이셨으며,또한 달마조사는 왜 서쪽에서 왔겠는가?
남전스님은 납승의 급소로 아픈 곳을 끄집어내어 그의 집착
을 타파해 주었다.뜰에 핀 꽃을 가리키며 대부를 부르면서,
“요즈음 사람들은 이 한 포기의 꽃을 마치 꿈결처럼 본다”고
하였다.이는 마치 만 길 벼랑 위에서 사람을 떨어뜨려 목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