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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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셈을 감파해 버렸다.”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러하다.그래도 설두스님은 도적이 떠
난 뒤에 활을 당긴 꼴이다.그처럼 대중을 위해 힘을 다하였으나 재
앙이 제 집에서 나오는 데야 어찌하겠는가.말해 보라,설두스님은
핵심을 알았을까?꿈꾸냐?꿈속에서 안 것인데 무슨 속셈을 감파해
버렸다 말하느냐?준험하다.황금빛 사자라도 찾지 못한다.
평창
유마힐이 여러 대보살들에게 각기 둘이 아닌 법문을 말하게
하였다.때에 서른두 보살이 모두 나누어 보는 견해[二見]인 유
위(有爲)․무위(無爲)와,진(眞)․속(俗)이제(二諦)를 합일시켜
이를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 하였는데,뒤이어 문수보살에게
이를 묻자,문수보살은 “제 생각으로는 일체의 법에 말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보여줌도 없고 알려줌도 없으며,모든 물음과
답변을 떠난 그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라고 하였다.대체로 서른두 보살은 말로써 말을 버렸
다.그러나 문수보살은 말이 없는 것[無言]으로 말을 버려 일시
에 털어 버려 아무것도 필요치 않는 것으로,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감이라 하였다.그러나 이는 신령한 거북이 꼬리를 끄는 것
과 같아 자취를 쓸어버린다는 게 그만 또 다른 흔적을 이룬 꼴
이요,또한 빗자루로 티끌을 쓸면 빗자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처럼,뒤에 여전히 자취가 남아 있음[餘蹤跡]*을 모른 것이
20)
다.
이에 문수보살은 유마힐에게 되물었다.“저희들은 각자의 설
명이 끝났습니다.인자(仁者)께서 말씀하셔야겠습니다.무엇이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유마힐은 묵묵
*당본을 좇아 ‘여종적(餘蹤跡)’으로 번역했으나,삼성본에는 ‘제종적(除蹤迹)’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