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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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117
고 말한다.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처럼 행각했다가는 나귀
해[驢年:12간지 중에 이런 간지는 없다]가 되어야만이 망상을
쉴 수 있다는 점이다.”
옛사람이 잠시 들어 희롱했다지만 어찌 승부․득실․시비
따위의 견해가 있겠는가?
동봉스님은 임제스님을 친견했다.그때는 깊은 산에다 암자
를 짓고 살 때였다.어느 스님이 그곳에 이르러 마침내 물었다.
“여기에서 갑자기 호랑이를 만났을 때는 어찌하시렵니까?”
동봉스님이 호랑이 울음소리를 냈는데 이는 호랑이를 이용하
여 멋지게 응수한 것이다.스님 또한 이를 알고서 잘못을 가지
고 더더욱 잘못으로 나아가 바로 겁먹은 시늉을 하였다.암주가
껄껄거리며 크게 웃자,스님은 말하였다.
“이 도적아!”
“ 노승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는 옳기는 옳지만 둘 다 깨닫지 못하여,천 년이 지난 뒤
에 남의 점검을 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옳기는 옳았지만 어리석은 두 도적이
귀를 막고 방울을 도적질할 줄만 알았다”고 말하였다.그 두 사
람은 모두 도적으로서 중요한 문제에 당면했으면서도 어찌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귀를 막고 방울을 도적질한 것이다.두 늙은
이는 마치 백만 군사의 진영을 배열해 놓고서 문득 빗자루 하
나를 다투는 꼴과 같았다.‘이 일’을 논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만일 그
저 잡아들이기만 하고 놓아줄 줄 모르며,그저 죽이기만 하고
살릴 줄을 모른다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잡다함이 없었다.두 사람의 이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