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3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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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153
“토끼가 새끼를 뱄다.”
-험하구나.쓴 외는 뿌리까지 쓰고 단 외는 꼭지까지 달다.그림자 속
에서 살림살이를 하니,지문스님의 소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어떤
사람이 나온다면 이는 반야의 체인지 반야의 용인지를 말해 보라.흙
위에 진흙을 더하는구나.
평창
지문스님이 말한 “조개는 밝은 달을 머금었고,토끼가 새끼
를 뱄다”는 것은 모두 중추절(仲秋節)의 뜻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의 의도는 조개와 토끼에 있지 않다.그는 운문스
님 회하의 존숙이시다.한 구절 속에 반드시 세 구절,즉 하늘
과 땅을 덮는 구절[函蓋乾坤句],많은 물줄기를 끊는 구절[截斷
衆流句],파도를 따르고 물결을 쫓는 구절[隨波逐浪句]을 갖추
고 있다.이는 꾸며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저절로 훌륭히 하였던
것이다.준험한 곳에서 그 스님의 물음에 대답하여 조금 칼날을
드러내니 참으로 기특하다 하겠다.
그러나 옛사람은 끝내 그림자를 희롱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방편의)길을 제시하여,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볼 수
있도록 마련해 주었다.
“어떤 것이 반야의 체이냐”는 스님의 물음에 지문스님은 “조
개가 밝은 달을 머금었다”고 말하였다.이는 한강(漢江)에서 생
산되는 조개 속에 맑은 진주가 있는데,중추절이 되면 조개는
수면으로 떠올라 입을 벌리고 달빛을 빨아들여 교감(交感)되어
진주가 생긴다 한다.합포주(合浦珠)가 바로 그것이다.그러므로
중추절에 달이 뜨면 진주가 많이 나오고,없으면 진주가 적게
나온다고 한다.
“어떤 것이 반야의 용이냐”고 묻자,지문스님은 “토끼가 새
끼를 뱄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