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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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163
다시 말했다.
“부채가 부서졌다면 무소를 되돌려다오.”
-이 말 할 사람 한 명은커녕 반 명도 없다.쯧쯧!선상을 뒤엎었더라
면 좋았을걸.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오면서 말하였다.
“대중들아,좌선하러 가자.”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겼군.창을 빼앗겨 버렸으니,이럴 수도 저
럴 수도 없구나.
설두스님이 일갈(一喝)한 후
“낚시를 던져 고래를 낚으려 했더니,겨우 새우를 낚을 줄이
야”라는 말을 마치고 문득 법좌에서 내려와 버렸다.
-그(설두스님)가 이 같은 꼴을 불러들인 것이다.도적이 떠난 뒤에 활
을 당긴다.불과(佛果)스님은 스스로 이 말에 대해 묻고 말하였다.
“또 여러분에게 묻겠노니,이 스님이 ‘대중들아,좌선하러 가자’고 말
하였는데 설두스님의 말을 알았을까,몰랐을까?몰랐다면 어떻게 이
처럼 말할 줄 알았겠는가?”알았다면 설두스님은 다시 “낚시를 던져
고래를 낚으려 했더니 겨우 새우를 낚을 줄이야”하고 문득 법좌에
서 내려와 버렸는데 말해 보라,어렵게 꼬인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자세히 참구하고 살펴보라.
평창
“무소뿔 부채를 오랫동안 써 왔는데도 물으면 의외로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사람마다 무소뿔 부채를 지니고 하루종일 모두
그의 힘을 받고 있으면서도 왜 묻기만 하면 모두가 모르는 것
일까라는 것이다.시자스님,투자스님,나아가서는 보복스님까
지 모두가 몰랐었다.말해 보라,설두스님은 알았을까?
듣지도 못하였느냐?무착(無著)스님이 문수보살을 예방하여
차를 마실 무렵 문수가 파리(玻璃)찻잔을 들고서 말했던 것을.
“남방에도 이런 게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