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6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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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이 말한 뜻은 세상의 모든 등롱(燈籠)과 노주(露柱)따위
에 모두 이름이 있으므로,세존께서도 이 묘정원명(妙精元明)을
드러내어,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이라고 이름하여,우리에게 부
처님의 뜻을 깨칠 수 있도록 마련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향대(香臺)를 보느니라”고 하
시자,아난은 말하였다.
“저도 향대를 봅니다.바로 이것이 부처님이 보시는 것입니
다.”
“ 내가 향대를 본다는 것은 알겠지만 내가 향대를 보지 않을
때는 그대가 어떻게 보겠느냐?”
“ 제가 향대를 보지 않을 때가 바로 부처님을 보는 것입니다.”
“ 내가 보지 않는다 말한 것은 자연히 내 자신이 아는 것이며,
그대가 보지 않는다 말한 것은 자연히 그대 자신이 아는 것이
다.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것을 그대가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옛사람은 “여기에 이르러 스스로 알아야 하며 남에게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세존의 “내가 보지 않을 때는 어찌하여 내
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느냐?만일 보지 않는 것을 본다
면 자연 저 (여래가)보지 않는 모습이 아니다.만일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자연 물상(物相)이 아니거늘,어찌 네
가 아니겠느냐?”라는 말씀과 같다.만일 인식하는 것으로 사물
이 있다 말한다면 자취를 쓸어버리지 못한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할 때는 영양(羚羊:산양)이 절벽에 뿔을 걸고
있는 것처럼 소리와 종적과 호흡이 모두 끊어지니,어디에서 찾
을 수 있겠는가. 능엄경 의 뜻은 처음엔 용서[縱破]를 하였으
나 뒤에는 비판[奪破]을 한 것이다.설두스님은 교안(敎眼)을 뛰
어넘는 송(頌)을 했으니,물상(物相)을 송하지도 않고 또한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