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3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P. 183
벽암록 下 183
“그대가 제이의제로 말했다는 것을 참으로 알았다.”
과연 그 말이 적중하여 문득 다시 묻기를,“사형(師兄)!어떤
것이 여래의 말씀입니까?”라고 하자,보복스님은 말씀하셨다.
“차 마시고 정신차려라!”
이는 거꾸로 다른 사람에게 창을 빼앗겨 버린 꼴이다.대단
하신 장경스님이 돈도 잃고 죄를 지었다.여러분에게 묻노니,
여래의 말씀은 몇 개나 있느냐?반드시 한마디,한 구절도 없다
고 알아차려야만이 두 사람의 잘못을 알게 될 것이다.자세히
살펴보면 두 사람 모두 방망이를 맞아야 한다.이들은 모두 한
가닥(제이의제의)길을 터놓고서 그와 함께 알음알이를 내었다.
어느 사람은 “보복스님의 말은 옳고,장경스님의 말은 옳지
않다”고 하여,오로지 말을 따라서 이해하고 “잘한 것도 있고,
잘못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옛사람(보복․장경스님)의 솜씨가 전광석화 같
았음을 모른 것이다.요즈음 사람들은 옛사람이 휙 뒤집어 놓았
던 점을 살피지 않고 오로지 언구 아래 치달리며 말하기를 “당
시 장경스님이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기에 제이의제에 떨어졌다.
보복스님의 ‘차 마시고 정신차리게!’라는 말이 바로 제일의제
(第一義諦)이다”라고 한다.이처럼 이해했다간 미륵이 하생하여
도 고인의 뜻을 알지 못하게 된다.
작가라면 끝내 이러한 견해를 일으키지 않고 이 소굴에서 뛰
어나와 반드시 끝없이 초월하는 한 가닥 길이 있어야 할 것이
다.“귀머거리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들 어찌 틀린
곳이 있겠으며,보복스님이 “차 마시고 정신차려라!”라고 말했
으나 어찌 옳을 것이 있겠는가?이는 더더욱 아무런 관계가 없
다.그러므로 “활구를 참구해야지 사구를 참구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