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4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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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로 나타나고,중국놈이 오면 중국놈으
                 로 나타나 삼라만상이 종횡으로 밝게 나타난다.이게 공훈이 있
                 는 것이다.법안스님은 말하기를 “불지(佛地)깨친 자를 이름하
                 여 이 경전을 간직하였다고 하겠다”고 했는데,위의 두 구절로
                 (법안스님의)공안을 모두 송한 것이다.
                   “오랑캐나 중국놈이 찾아오지 않으니 전혀 자취가 없구나”라

                 고 했는데,이는 설두스님이 콧구멍을 비틀어 버린 것이다.더
                 더구나 오랑캐․중국놈이 찾아온다면 그들을 비춰 나타내 주겠
                 지만 모두가 찾아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까?여기에 이르러
                 서는 부처님 눈으로 엿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말해 보라,이
                 는 공훈인지 죄업인지,오랑캐인지 중국놈인지를…….
                   이는 바로 영양(羚羊)이 벼랑에 뿔을 걸고 있는 것처럼 자취
                 가 없으니,소리와 종적을 말하지 마라.호흡소리마저 없는데
                 어느 곳에서 찾겠는가?모든 하늘에서 꽃을 공양하려 해도 공

                 양할 길이 없고 마구니 외도가 엿보려 해도 문이 없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동산(洞山)스님은 일생을 사원에 주석하였으나 토
                 지신(土地神)이 그의 종적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였는데,하
                 루는 부엌 앞에서 쌀과 국수를 던져 버리는 것을 보고서 동산
                 이 화를 내어 “삼보의 상주물(常住物)을 어찌 이처럼 짓밟을 수
                 있다더냐”라고 말하였을 때,마침내 토지신은 (동산스님을)한

                 번 뵐 수 있게 되어 대뜸 절을 올렸다 한다.
                   설두스님의 “자취가 이미 없으니”라는 말은 자취가 없는 곳
                 에 이르면 파순도 길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모든 중생을 어린아이로 여기셨다.한 사람이라
                 도 신심을 내어 수행하면 파순의 궁전이 흔들리고 부서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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