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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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실[槽廠]*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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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감사의 절을 올리고 행자실로 들어가 대중과 함께 3
년을 일했는데,석두스님이 하루는 대중들에게 “내일은 불전 앞
의 잡초를 베겠다”고 말하였다.그 이튿날 대중들이 각기 가래
와 호미를 준비하여 잡초를 베는데,단하스님은 홀로 항아리에
물을 길어다 머리를 감고 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석두스님이
이를 보고 웃더니 머리를 깎아 주고,또다시 계(戒)를 설하려
하자,단하스님은 귀를 막고 나와 버렸다.그 후 바로 강서를
찾아가 다시 마조스님을 배알할 적에 참례도 하지 않은 채 바
로 승당으로 들어가 성승(聖僧:빈두루존자상 아니면 문수보살
상)의 목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때에 대중들이 경악하여 이를
급히 마조스님에게 아뢰자,마조스님은 몸소 승당으로 들어가
그를 보고서 말하였다.
“나의 아들을 쏙 빼 닮았구나[天然].”
단하스님은 문득 내려와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법호를 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로 인해서 천연(天然)이라 이름하였다.
그 옛사람들이란 본래부터 이처럼 빼어났다.이른바 관리로
뽑히는 것보다는 부처에 뽑히는 게 낫다는 것이다. 전등록(傳
燈錄) 속에 그의 어구(語句)가 실려 있는데,깎아지른 천 길 벼
랑에 서 있는 듯,구절마다 못과 쐐기를 뽑아 주는 솜씨가 있었
다.
이는 스님에게 “어느 곳에서 왔느냐”고 묻자,스님이 “산밑
에서 왔습니다”고 말한 것과 똑같다.
스님은 온 곳을 알지 못하여 두 눈을 멀쩡히 달고서도 거꾸
*廠:齒자와 兩자의 반절.벽이 없는 마구간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