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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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59


                 로 주인을 감파당했다.당시에 단하스님이 아니었다면 수습하
                 기 어려웠을 것이다.단하스님이 문득 “밥은 먹었느냐”고 하니,
                 처음(의 문답)은 (상대를)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고,이 두
                 번째 문답에서 그를 감파한 것이다.스님이 “먹었습니다”라고
                 말하였는데,이 어리석은 놈이 원래 몰랐던 것이다.
                   단하스님이 “너에게 밥을 먹여 준 사람은 안목을 갖추었느

                 냐”고 묻자 스님은 말이 없었다.단하스님이 뜻한 바는 “너 같
                 은 놈에게 밥을 먹여 무엇 하겠냐”는 것이다.역량 있는 스님이
                 었다면 시험삼아 그를 한 번 내질러 보고서 그가 어떻게 하는
                 가를 살폈어야 했다.그러나 단하스님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는
                 데,스님은 문득 눈만 껌벅껌벅하면서[眼眨眨地]*말이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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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이다.
                   보복스님과 장경스님은 설봉스님의 회하에 함께 있으면서 항
                 상 옛사람의 공안을 들어 이러쿵저러쿵했다.장경스님이 보복

                 스님에게 물은 “밥을 먹여 주었으니 은혜를 갚을 만한 자격이
                 있는데,무엇 때문에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였을까?”라는
                 말은,굳이 공안의 일을 모두 묻지 않고 이 말을 빌려 화두(話
                 頭)를 만들어 그가 어떻게 알고 있는가를 시험해 보려 한 것이
                 다.이에 보복스님은 “베푸는 사람,받는 사람 둘 다 눈먼 놈이
                 다”고 하였으니,통쾌한 답변이다.여기에서는 오직 기연에 딱
                 들어맞는 일만 논하였으니,이 안에 몸을 벗어날 길이 있었다.

                 장경스님이 “그 기틀을 다하여도 장님이 되었을까”라고 묻자,
                 보복스님은 “나를 장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보
                 복스님의 뜻은 “내가 이처럼 안목을 갖추어 그대에게 말해 주
                 었는데도 나를 장님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그러나


            *眨:側자와 洽자의 반절.눈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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