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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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75
하다고 하겠다.선상에 기대어 앉은 노련한 선지식이라도 정수
리에 안목이 없었더라면 그를 꺾기 어려웠을 것이다.
투자스님에겐 몸을 비낄 곳이 있었다.스님이 이러쿵저러쿵
도리를 지어 투자스님을 잡아다 시장에 싼값에 팔려고 하였으
나,막상 찾아가 보니 여전히 노련한 투자스님을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듣지 못하였느냐,암두스님의 말을.
“전투로 논한다면 곳곳마다 몸을 피할 곳에 있는 것과 같
다.”
투자스님은 아주 느슨히 놓아주었다가 빨리 거두어들였다.
스님이 당시에 몸을 비껴서 말할 줄 알았다면 입에 피를 머금
어 남에게 뿌리려다 제 입이 먼저 더러워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납승들이란 제일의(第一義)도 만들지 말고,제이의(第二義)에
쉬어서도 안 된다.스님은 이를 던져 버리지 못하여,투자스님
에게 콧구멍이 뚫린 것이다.송은 다음과 같다.
송
투자여,투자여!
-뚜렷하구나.천하에 이처럼 진실한 늙은이는 없다.남의 집 애들을
못쓰게 만드는구나.
상황에 대처하는 솜씨[機輪]는 걸림이 없네.
-무엇이 있었기에 그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일까?그래도 조금은 있었
지.
한 번 휘둘러 둘을 얻고
-그대의 눈동자를 바꿔 버렸다.투자스님의 뜻이 무엇인가?
저기도 이와 같고 여기도 이와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