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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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87
-몽땅 빼앗겨 알몸이 됐네.비탈길을 내려오듯 빠르게 달리지 않으면
떠나는 배를 타기 어렵다.맞혔다.
스님이 벌떡 몸을 누이며 거꾸러지자
-전혀 다르다.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이 망상분별을 하
는 놈아!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시자야,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
-법령에 의하여 처치했다.애써서 다시 검사해 볼 필요가 없다.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벼운 편인데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스님이 문득 도망치자
-널 속에서 눈알을 부라리는구나.죽음 속에서 목숨을 얻었군.아직도
숨이 붙어 있구나.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허튼 짓 하는 놈!어찌 깨달을 날이 있으랴.”
-아깝게도 봐줬구나.법령에 의거하여 시행하였다.(이 스님의 하는 짓
이란)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설두스님은 이를 들어 말하였다.
“세 걸음까지는 살아 있다 해도 다섯 걸음 가면 꼭 죽을 것이
다.”
-한 번은 치켜올렸다가 한 번은 깎아 내린다.가령 백 보를 도망한다
해도 꼭 목숨을 잃을 것이다.다시 말하는데 화살을 보아라.말해 보
라,설두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를.생사를 같이할 수 있다면 약산이
곧바로 눈알을 부라리고 입을 헤벌쩍 벌리겠지만[目瞪口呿]*한결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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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멍 없는 철추와 같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瞪:直자와 耕자의 반절.화가 난 눈으로 똑바로 쳐다본다는 뜻이다.呿:袪자와
遮자의 반절.또는 立자와 伽자의 반절.입이 헤벌어진 모양을 말한다.